식용품, 공산품 등 다양한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래규모가 큰 재래시장 신창동을 중심으로 1945년 광복과 함께 국제시장이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고 1950년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장사를 시작하면서 시장으로 형성되었으며 미군이 진주하면서 군용물자와 함께 온갖 상품들이 부산항을 통해 밀수입되었는데 이들 밀수입 상품들은 도떼기시장을 통해 전국 주요시장으로 공급되었다.
국제시장은 밀수 외국상품은 물론 유엔군 군수물자까지 흔하게 거래되었다. 지금은 약 650개 업체에 1,489칸의 점포가 있으며 종사하는 종업원 수는 약 1,200∼1,300명에 이른다.
서울의 남대문 시장과 비슷한 분위기지만 다른 재래시장과는 다르게 식용품, 농수축, 공산품 가게가 미로처럼 얽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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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공구는 가방, 문구, 공예품, 2공구는 주방기구, 철기, 안경점, 3공구는 침구류, 양품점, 4공구는 포목, 주단, 양단, 주방기구, 5,6공구는 가전제품, 기계공구, 포목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방구, 주방기구, 기계공구의 의류, 전기 전자류 등이 주종을 이루는 도소매업 시장이다.
인근의 대형 백화점을 비롯한 광복동 상가들과의 상권 경쟁 관계에 있으나 여전히 부산 시장의 상징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로 꼽힌다. 국제시장이 유행가요인 '굳세어라 금순아'에도 등장하는 것처럼 피난민들의 애환이 깃든 시장으로서 한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래규모가 큰 시장으로 성장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