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를 상징하는 곳으로 영화관람과 함께 쇼핑, 위락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매년 이곳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 전야제 행사로 유명 영화인들의 핸드프린팅 및 눈꽃 점 등 <PIFF광장 여는 마당>이 개최되고 있다.
각종 수산물과 건어물을 싼값으로 구입할 수 있는 한국에서 가장 큰 어시장이다.
부산 사람들의 찬거리로 올려지는 수많은 해산물이 싱싱하게 제공되는 자갈치 시장에서 자갈치 아지매들의 억센 사투리가 부산의 아침을 상징하는 것 중 하나이다.
매년 10월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축제가 열려 풍성한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식용품, 공산품 등 다양한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래규모가 큰 재래시장
신창동을 중심으로 1945년 광복과 함께 국제시장이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고 1950년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장사를 시작하면서 시장으로 형성되었으며 미군이 진주하면서 군용물자와 함께 온갖 상품들이 부산항을 통해 밀수입되었는데 이들 밀수입 상품들은 도떼기시장을 통해 전국 주요시장으로 공급되었다.

국제시장은 밀수 외국상품은 물론 유엔군 군수물자까지 흔하게 거래되었다. 지금은 약 650개 업체에 1,489칸의 점포가 있으며 종사하는 종업원 수는 약 1,200∼1,300명에 이른다. 서울의 남대문 시장과 비슷한 분위기지만 다른 재래시장과는 다르게 식용품, 농수축, 공산품 가게가 미로처럼 얽혀 있다.
1공구는 가방, 문구, 공예품, 2공구는 주방기구, 철기, 안경점, 3공구는 침구류, 양품점, 4공구는 포목, 주단, 양단, 주방기구, 5,6공구는 가전제품, 기계공구, 포목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방구, 주방기구, 기계공구의 의류, 전기 전자류 등이 주종을 이루는 도소매업 시장이다.

인근의 대형 백화점을 비롯한 광복동 상가들과의 상권 경쟁 관계에 있으나 여전히 부산 시장의 상징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로 꼽힌다. 국제시장이 유행가요인 ‘굳세어라 금순아’에도 등장하는 것처럼 피난민들의 애환이 깃든 시장으로서 한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래규모가 큰 시장으로 성장하였다.
골목 하나가 책으로 가득한 곳, 보수동 책방 골목.
변변한 책 한 권 구하기 어려웠던 옛날, 헌책을 팔아 저녁거리를 마련하던 아련한 추억이 함께 서린 곳이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국제시장 입구 대청로 사거리 건너 보수동 쪽으로 난 사선 방향의 좁은 골목길에 집결된 책방을 말한다.
6.25전쟁으로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는 피난민이 가져온 귀중한 책을 생활을 위해 팔고, 피난 온 학교 교수들과 학생들이 필요에 의해 사들이게 되면서 활기를 얻었다.
부산의 대표하는 도시민 휴식공원, 마치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를 건너보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용두산공원 내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 백산 안희제 선생의 흉상, 팔각정, 꽃시계 등과 매년 1월 1일에 타종식을 거행하는 부산시민의 종이 있다. 또한 이곳의 명물인 부산타워에는 전망대가 있어 부산항을 중심으로 영도와 부산시가지는 물론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한국 전업 미술가협회 회원 등 전업 작가들이 국제시장 지하상가에 작업실을 모아 대시민강좌, 갤러리, 춘추기획전, 우수작가초대전 및 개인전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작가들과 일반인과의 대화 및 판로를 모색하는 등 "부산의 몽마르트"라고 불리는 "미술의 거리"를 조성 운영하고 있다.
40계단문화관광테마거리는 40계단을 거쳐 40계단 문화관과 팔성관광에 이르는 거리로, 50-60년대 시절의 특색을 살린 문화 거리이다. 이 거리는 50-60년대 어려웠던 시절의 피난민의 애환과 향수를 느낄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40계단 일대에는 많은 피난민들이 주위에 밀집하여 사는 판자촌으로, 바로 앞으로 보이는 부두에서 들어오는 구호물자를 내다 파는 장터였다. 또한,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장소로 유명한 그 시대 그 시절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대화재 전의 옛 부산역을 주제로 한 기찻길과 피난민을 실어 나르던 부산항을 주제로 한 바닷길로 조성되어 있으며, 테마거리 곳곳에는 옛 생활상을 재현한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깡통시장은 6.25후 미군이 진주하면서 군용 물자와 함께 온갖 상품들이 밀수입되면서 과일, 생선 등 갖가지 통조림이 많이 수입되었는데 그에 통조림 깡통에 유래하여 이름이 깡통시장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돗떼기 시장’이라고도 했는데 그 당시 이곳을 통해 전국의 주요 시장으로 수입 물건들이 공급되었다고 한다.
초창기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통조림 등 깡통 제품을 많이 판매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지금은 양주 의류 장식품 액세서리 패션 잡화와 미니카세트 등 일부 외제 전자제품도 취급하고 있다.
부평시장 내 깡통시장에 점포를 갖고 있거나 영업을 했던 상인들의 90% 이상으로 구성된 월드밸리는 백화점에 없는 다양한 품목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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